약 2년간 몸담았던 나의 첫 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떠나게 되었다. 3년마다 주는 안식휴가를 아쉽게 받지 못했으니 조금 이른 타이밍이긴 하다. 이 글은 갑작스럽게 이직을 준비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조금씩 기록해 뒀던 마음가짐들을 모은 글이다. 일반적인 이직 회고처럼 회사별 전형 과정이나 면접 복기 등의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갑자기 찾아온 이직
처음 만난 카카오워크라는 조직은 나에게 유토피아 그 자체였다. 팀원들이 잘 맞으면 하는 업무가 재미없거나, 업무가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첫 회사부터 서비스, 조직 문화, 팀원들 3가지가 모두 완벽했다. 서비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달리며 매일매일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불행히도 이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2023년 5월 갑작스러운 대표의 사임 선언과 함께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까지 새로 들어갈 신규 기능을 개발하느라 야근한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직 시장도 안 좋은데 왜 하필 지금 이렇게 된 걸까”
“난 아직 겨우 2년차인데 딱 1년만 더 버텨주지”
억울한 마음에 원망도 참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얼른 다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순간은 좌절을 맛볼 때라고 한다. ‘이것만 끝내면 이력서 업데이트해야지..’ ‘책 스터디도 얼른 해야되는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진정 눈앞에서 좌절을 맞으니 바로 실천에 옮기게 되더라. 모든 업무가 홀딩되고 부끄럽게도 입사 이후로 한 번도 업데이트하지 않았던 이력서를 1년 5개월 만에 다시 꺼냈다. 그동안 기한에 쫓겨 정신없이 쳐낸 티켓들을 훑어보며 내가 해왔던 업무들을 정리했다.
이 글에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안에서도 조직별로 유지되는 사업과 정리되는 사업이 나누어졌다. 다행히 우리 팀은 유지로 결정이 되었지만, 어떤 부서에서 유지할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 길어졌다. 처음 두 달 정도는 아침에 눈 뜨면 내 소속이 바뀌어 있고 우리 팀의 거취가 어디로 결정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왔다가 다시 무산되기를 반복했다. 논의가 길어지는 탓에 외부로 이직을 하거나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팀원들이 생겨났고, 나도 이 과정에 지쳐 외부로의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직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우리 서비스를 성장시키지 않고 유지만 하겠다는 회사의 결정이었다.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컸던 만큼 할 수만 있다면 이 팀에 남아 카카오워크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을 꼭 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남아있어도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이직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라는 이직 면접 단골 질문에 대한 답변 준비는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하기
이제 진짜 이직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마지막으로 아래 질문들에 대해서 최종 점검했다.
✔︎ 왜 이직을 하려하는가?
✔︎ 이직이 아닌 다른 대안은 고민해보았는가? 시도해보았는가?
✔︎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충분히 준비되었는가?
여기서 준비는 이력서나 면접 준비가 아닌 마음의 준비를 말한다. 어쨌든 본인이 한 선택이므로 버텨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진다. 처음 이직 준비를 시작할 때 마음먹었던 목표에 아직 미치지 못했는데 합리화하고 끝내려 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이 과정에서 반드시 충분한 마음의 준비와 구체적인 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첫 번째 취업을 준비할 때와 이직을 하게 된 지금의 시장 상황이 180도 바뀌었기 때문에 더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마주한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안 좋았다. 듣던 것처럼 대부분 회사들의 공고가 닫혀있었고 겨우 찾아낸 공고마저도 3년이 되지 않은 주니어는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공고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떠밀리듯 이직 준비를 하게 된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에 아무 회사나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상처를 받아보니 또다시 상처받는 게 두렵기도 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첫 회사를 선택할 때와는 확실히 회사를 보는 기준이 달라졌고 훨씬 신중해졌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길어지는 기간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불안한 마음은 나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 만나는 자리도 참 좋아했었는데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나마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계속 힘든 얘기만 늘어놓는 모습이 참 못나보였다. 어쩌다 나간 자리에서 웃으며 괜찮은 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바다는 참 강하고 단단한 사람인 것 같다.” 라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인데, “너 걱정은 안해 ~” 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도 조금은 걱정해줘.”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스스로 단단해지기
처음엔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멈춰있는 것 같고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온 탑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된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면접 자리에서 그대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지원한 회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자신감 있는 모습과 이 회사마저 떨어질까 불안함으로 가득찬 간절한 모습은 한 끗 차이지만 합격과 탈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탈락을 겪더라도 탈락에 매몰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직 면접 특성상 대부분 해왔던 업무 위주로 질문이 나오기 때문에 몇 번 면접을 보다 보면 어느 정도 질문 패턴이 겹치게 된다.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해서 내내 면접 준비에 몰두하는 것보다 마음의 여유를 채우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찾은 방법은 작은 목표를 만드는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운동하기
, 잠들기 전 30분 독서하는 시간 갖기
, 읽고 싶었던 자기계발서 완독하기
와 같은 목표들을 만들었다. 작은 성취로부터 얻은 자신감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 시기쯤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나는 힘든 순간일수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습관이 있다. 이게 내 멘탈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해왔지만, 사실은 정신건강에는 정말 안 좋은 습관이라고 한다.
힘든 시기를 포기하지 않고 더 오래 버티려면, 우울한 감정을 적당히 털어내고 다시 힘을 낼 원동력을 채워주는 사람들을 만나 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나는 감사하게도 함께 이직을 준비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감정을 털어놓으며 이 시간들을 잘 버틸 수 있었다.
겪어보니 면접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었다. 답변 속 내용
보다는 답변을 말하는 태도와 분위기
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1시간 남짓 되는 짧은 시간동안 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가 봐도 내가 탐나는 인재가 되면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것이고 회사에게서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결과적으로 나는 네이버클라우드에서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참 귀한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단순히 업무를 하며 기술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배움이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내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서도 정말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역경과 좌절이 없었다면 내가 이 시기에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결국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나는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 떠나게 되었지만, 이 회사에서의 생활은 정말 다시는 못 겪을 것 같이 찬란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가 선택한 나의 첫 회사이고 정말 좋은 사람들과 정말 좋은 경험들을 주었으니,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게 정말 고맙다. 여기서 만난 뛰어난 나의 동료들이 이제는 곳곳에 뿔뿔이 흩어진 덕분에 다양한 회사의 명함을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
끝으로 힘들고 길었던 시간을 버티게 해준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자마자 소리지르며 마치 당신 일처럼 기뻐해준 가족들부터 어느덧 인생의 반을 함께 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들, 힘들 때 더 자주 만나 운동하며 같이 이겨냈던 KOCKAO 크루들,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팀원이 된 나의 한 달 후배님과 부모님처럼 챙겨주시고 신경써주신 정말 감사한 나의 파트장님, 팀장님, 실장님을 포함한 카카오워크 팀 전부! 감사할 분들이 정말 많다. 새삼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이력서를 정리할 때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이었는데 어느덧 코에 찬바람이 스치는 계절이 되었다. 당연히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또 이런 고난을 겪어도 무작정 좌절하기 보다는 다음 성장을 기대하며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은 언젠가 또 실패를 겪을 먼 훗날의 나를 위해 적는 글이다. 그때는 조금만 힘들고 얼른 다시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